2024년 총선 이후 보수 정치의 위기론이 다시금 고개를 들고 있다. 일부에서는 “보수의 궤멸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단순히 의석 수의 감소나 당 지지율 하락을 넘어, 국민의 마음속에서 보수라는 이름이 더 이상 설득력을 가지지 못하는 근본적 변화가 시작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자성의 목소리다.
보수는 원래 질서를 중시하고, 안보와 시장, 전통의 가치를 중심으로 정치적 안정과 효율을 추구해 왔다. 그러나 최근 한국 사회에서 보수는 그 정체성을 지키는 데도, 새롭게 재구성하는 데도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진영 논리로 뭉친 내부 권력 다툼, 혁신 없는 인물 공천, 미래세대와의 단절,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대 흐름을 읽지 못하는 경직된 언어가 지금의 위기를 자초한 셈이다.
보수 정치가 궤멸로 향하는 조짐은 이미 여러 차례 감지되었다. 2022년 대선과 2024년 총선 사이, 보수는 국민의 선택을 받기보다 상대의 실책에 기댄 생존 전략에 머물렀다. 명확한 국가 비전, 세대와 계층을 아우르는 정책 의제,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리더십이 부재한 상황에서 보수는 스스로의 틀 안에 갇혀 변화를 거부했다.
정치는 끊임없이 국민과 재계약하는 작업이다. 보수가 다시 살아나기 위해선 낡은 구호나 과거의 성공 기억에 기대는 자세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금 국민이 원하는 보수는 단지 ‘진보에 반대하는 집단’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책임 있는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정치세력이다. 과거의 안보와 성장만이 아니라, 불평등 해소, 지속가능한 복지, 다양성에 대한 포용까지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
보수가 여전히 국민 대다수의 정서 속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문제는 그 정서와 현실의 간극이 너무도 멀어졌다는 데 있다.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이 ‘권력을 연장하려는 욕심’으로 비쳐질 때, 그 어떤 보수적 명분도 설득력을 잃게 된다.
보수의 궤멸은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신뢰의 문제다. 지금 이대로라면 국민은 더 이상 ‘보수’를 필요로 하지 않게 될 수도 있다. 지금이야말로 보수가 변화해야 할 마지막 기회다. 세대와 가치를 잇는 리더십, 통합과 성찰의 언어, 그리고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담대한 상상력이 없다면, 궤멸은 ‘이미 시작된 일’로 기록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