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모란미술관 기획전 《사물로부터》 개최

  • 등록 2025.05.06 20:5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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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씨엔뉴스24) 모란미술관은 개관 35주년을 기념하여 ⟪사물로부터(By Way of Things)⟫를 개최한다. 전시장소는 모란미술관 내부와 모란미술관 뒷마당을 지나 한옥으로 지어진 옛 백련사의 건물들로 이어지며 고근호, 김신일, 김유정, 이순종, 이용덕, 정 현 등 6명의 작가가 참여해 조각과 설치, 드로잉 작품 47점을 선보인다. 전시는 4월 22일부터 6월 29일 일요일까지 열린다. 개막식은 오는 5월 9일 오후 4시에 모란미술관에서 가질 예정이다.

 

⟪사물로부터⟫는 조각의 전통적인 틀을 벗어나 ‘사물’의 존재와 의미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조각이라는 예술장르를 새롭게 조망하고자 기획했다. ‘조각가와 물질의 관계를 주체와 객체의 구조로부터 평형의 구조로 바꾸는 것이 가능할 수 있을까’하는 발상으로부터 출발한 이 전시는 ‘사물(Things)’에 대해 다시 생각하며 인간과 사물이 엮어내는 세계의 내적 운동을 탐구함으로써 사물이 더이상 도구이거나 배경이 아니라 세계를 생성하는 능동적 주체로 출현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이 전시의 핵심 개념인 사물은 물리적 공간을 차지하며 형태와 크기를 가진 구체적인 대상(Object)으로 한정한 것이 아니라 물리적이거나 비물리적인 모든 것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의미로서 사물(Things)을 의미한다. 모든 사물은 고립되어 있지 않고 네트워크(Network)로 전체와 연결된 세계에 존재하면서 저마다 존재 이유와 의미를 지닌 또 하나의 세계다. 한 점의 먼지, 하나의 부서진 조각도 나름의 의미와 가치를 지니며 우주의 무게를 담고 있다. 이러한 사물은 말없이 세계에 개입하고, 인간과 함께 의미를 생산하며, 이 세계를 다시 구축한다.

 

조각에서의 사물과 재료에 대한 탐구는 단순히 물질을 주목하자는 것이 아니라 공간과 인간, 그리고 그 사이에서 발생하는 의미와 관계를 맺는 방식을 연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물로부터⟫는 조각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과 사색을 통해서 각 작품이 지닌 의미의 영역을 탐구하는 과정이다.

 

이 전시에 참여한 고근호, 김신일, 김유정, 이순종, 이용덕, 정현 작가는 사물들의 내밀한 소리와 그들의 ‘있음’을 보라는 요청에 귀 기울이며 사물 스스로가 존재를 드러내도록 매개하고 돕고 자극한다.

 

고근호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배출하는 택배 상자는 재활용되거나 환경 쓰레기로 소각될 수 있지만 그것을 쉽게 작업이 가능한 재료로 파악하여 종이상자로 미륵불상과 반가사유상을 만들었다. 작가는 종이상자를 이어붙여 민불의 형태를 만들고 그 위에 민중들의 생활도구였던 방망이를 비롯하여 분청사기 파편들을 붙였다. 미륵불에 옹기종기 매달려 있는 사물에는 이것을 사용했던 사람들의 시간이 녹아있다. 이 작품에서는 민속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사물들이 부처와 만나 존재를 회복하는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

 

김신일의 '오색사이-0.6초-2024-1'은 작품의 가장 가운데에서 마음이란 글자의 첫 자음인 ‘ㅁ’으로부터 시작한 가하학적 형태가 일정한 두께로 외부로 확장하며 평면에 깊은 공간을 형성한다. 그런데 이 두께를 형성하는 오색의 얇은 띠는 우리의 시선을 혼란시키는데 정작 이 가는 띠의 색은 재활용센터에서 프레스에 압축된 깡통이나 알루미늄 캔에서 추출하여 사진을 아크릴에 압착하는 고급 프린트 기법인 디아섹(Diasec)으로 재현한 것이다. 아주 납작하게 압착된 폐기물이라는 ‘쓸모를 다 한 것’ 속에 숨어있는 색채와 에너지를 발견한 것은 ‘재생적 상상력’이 만들어낸 결과라 할 수 있다. 또한 오색의 띠가 만들어내는 결은 ‘인간의 생리작용 시간을 제외한 12시간을 초로 환산한 숫자’와 겹쳐진다. 옵아트의 일루전 효과를 활용하여 한글의 자음이 일정한 모듈을 지닌 채 확장하는 이 작품은 마음의 지층이자 우물이라 할 수 있다.

 

김유정의 '흐르는-숨'은 버려진 가구를 자연을 바라보는 창이거나 그것을 배양하는 인큐베이터로 되살린다. 나무와 창에 비친 식물의 이파리, 그리고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와 빛은 물질과 비물질의 경계를 침투하며 사물에 새로운 존재론적 의미를 부여한다. 가구의 틀로 만든 반투명의 창으로 경험하는 빛의 파장과 물이 떨어지는 소리는 마음의 진동과 같다. 사물과 빛, 소리가 어우러진 이 설치작업에는 비물질적 서사와 정서적 풍경이 함께 자리한다. 그래서 이 작품은 기억과 감정의 잔상을 비추는 거울의 역할도 한다.

 

이순종은 생활용품을 저렴한 가격에 파는 다이소에서 구입한 주방용품들을 조립하여 기능과는 상관없는 조형물을 만들었다. '거룩한 낭비'는 저렴하기 때문에 낭비하는 것은 풍요라기보다 결핍과 빈곤의 대리 충족이며, 거룩한 폐기물의 사원을 짓는 행위와 마찬가지라는 점을 보여준다. '잘 오시네'는 식기류와 같은 소비재가 제기(祭器)로 변모하여 제의적 차원을 획득하기도 한다. 대량생산된 평범한 사물은 산불 현장에서 주운 나무토막과 함께 놓여 신성함과 일상성을 교차하며 존재의 깊이를 열어 보일 뿐만 아니라 전시공간을 제의의 숭고한 공간으로 바꿔놓기도 한다.

 

이용덕의 역상조각(Inverted Sculpture)은 조각의 볼륨에 대한 우리의 믿음과 기대를 위반한다. 볼록 튀어나온 것이 실제로는 오목하게 들어간 음의 공간임을 깨닫는 순간 우리의 지각체계가 환영(illusion)에 의해 얼마나 지배받고 있는가를 깨닫게 만든다. 역상조각에서 빈 공간은 관람객이 움직일 때 이미지도 따라 움직이며 오목에서 볼록으로 바뀌는 시각효과를 창출하기도 한다.

 

정현은 여수의 섬 주변을 산책하며 파도에 휩쓸려 닳거나 표면이 예리해진 작은 돌들을 수집했다. 손바닥에 들어올 정도의 크기인 돌은 3D에 의해 터무니없이 거대한 크기로 확대됐으나 물질은 스트로폼이기 때문에 부피에 비해 한없이 가벼워졌다. 작품이 놓인 장소는 작은 돌이 애초에 있던 장소를 떠나 낯선 장소에 거주하며 새로운 의미를 생성하는 공간이 된다.

 

이 전시를 통해 관객들은 조각으로 제시된 각 사물에 담긴 저마다의 시공간을 느끼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세계를 새롭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각 사물이 지닌 고유한 세계를 예술가가 매개하여 의미를 생산한 결과물이 조각임을 확인함으로써 조각은 인간과 비인간의 공동창작물이란 예술작품의 존재에 대한 인식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나아가 이 시각을 확장하여 세계를 네트워크로 이해함으로써 인간과 사물이 동등한 존재론적 위계 속에서 하나의 세계에 공존하고 있음을 배울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이연수 모란미술관 관장은 “이번 전시가 1990년에 개관한 이래 ‘조각미술관’을 지향해온 모란미술관의 정체성을 다시 확인하는 장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1990년 4월, 경기 남양주 마석에 개관한 모란미술관은 개관 당시에 가졌던 조각미술관으로서의 정체성을 35년 동안 유지하며 한국 현대조각의 발전에 이바지해왔다. 매년 실내 전시장에선 조각을 중심으로 한 기획전과 다양한 장르의 미술 전시를 개최하고 있으며, 8,600여 평에 이르는 야외조각전시장에는 국내외 유명 조각가의 110여 점의 작품을 상설전시하고 있다. 야외조각상설전에는 대표적으로 최만린, 엄태정, 구본주, 류인, 전국광, 심문섭 등 한국 현대조각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과 현대조각의 아버지라 불리는 오귀스트 로댕의 '발자크' 기념상을 감상할 수 있다. 모란미술관에서 볼 수 있는 '발자크'는 2010년 이대우 컬렉터와 그의 어머니인 반청자 여사가 기증한 작품으로, 루브르박물관 주물 아뜰리에에서 작품 원본의 거푸집을 이용해 석고주조된 에디션 중 하나로, 원본 작품의 에너지와 감동을 그대로 담고 있다.

관리자 기자 pub9992@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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